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인천 프로야구 40년 올스타 (문단 편집) === 구원투수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1153658_438620_522.jpg|width=100%]] }}}||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25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224433 37.5%, #ff0000 42.5%, 57.5%, #007f55 62.5%)" '''{{{#fab93d {{{+1 [[태평양 돌핀스|{{{#fab93d 태평양 돌핀스}}}]]-[[현대 유니콘스|{{{#fab93d 현대 유니콘스}}}]] (1989~1999) }}}}}}''' }}} ||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25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1e3466 45%, #ff0000 55%)" '''{{{#fff {{{+1 [[SK 와이번스|{{{#fff SK 와이번스}}}]] (2001~2009) }}}}}}'''}}} || || '''{{{#fff {{{+1 구원투수 [[조웅천|{{{#fff 조웅천}}}]]}}}}}}''' || || '''인천 프로야구 40년 올스타 선정''' || > '''인천의 허리, 조웅천''' 인천 야구인 40명이 참여한 '인천 프로야구 올스타' 투표에서 가장 치열했던 부문은 구원투수였다. 역대 최고 마무리 투수 중 한 명인 [[정명원]](13표), SK 와이번스 벌떼 불펜의 '여왕벌' [[정대현(1978)|정대현]](9표), 최다 출장 기록 보유자인 [[정우람]](4표)보다 많은 표를 얻은 선수는 구원투수 역사를 새로 쓴 [[조웅천]] (14표)이었다. SSG 랜더스 감독 [[김원형]]은 “데뷔 때부터 인천에서 가장 오래, 많은 활약을 한 선수”라고 말했다. 현대 유니콘스에서 '현대판 마당쇠'로 불린 그는 1996년부터 '기록 제조기'로 명성을 쌓았다. 그해 조웅천은 전체 126경기 가운데 68경기에 등판했다. 1983년 삼미 슈퍼스타즈 장명부가 세운 60경기를 뛰어넘은 신기록이었다. 한국시리즈 2차전에선 연장전을 무실점으로 막았다. 인천 연고팀의 한국시리즈 첫 승리이자, 첫 번째 승리투수였다. '필승조'로 자리매김한 조웅천은 2000년 연고지를 옮긴 현대 유니콘스 소속으로 초대 홀드왕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이듬해부터 SK 와이번스에서 중간과 마무리를 전천후로 오갔다. 2003년 1점대 평균자책점으로 30세이브를 올려 구원왕도 차지했다. 그 이후 행보도 신기록의 연속이었다. 2005년 김용수(613경기)의 기록을 넘어서며 투수 최다 출장 신기록을 세웠다. 'KBO 1호' 통산 700경기 출장(2007년 4월), 800경기 출장(2008년 8월)도 조웅천의 몫이었다. SK 와이번스가 왕조로 군림한 2007년에도 평균자책점 1.57을 기록하며 2승 9세이브 16홀드로 활약했다. 2009년 시즌을 끝으로 은퇴할 때까지 그는 813경기에서 마운드에 올랐다. 지금은 SSG 랜더스 코치로 투수진을 이끌고 있다. SSG 랜더스 단장 [[류선규]]는 “오랜 기간 안정감 있는 투구로 셋업맨과 마무리 역할을 잘 소화했다”고 말했다. 참고로 [[인천 프로야구 20년 올스타]] 때에는 구원투수를 따로 선정하지 않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